静岡アジア人協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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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28回殉難者慰霊大祭 世界平和祈願大祭
友情新聞記事
第28回コリア半島出身殉難者慰霊世界平和祈願大祭

爽やかな秋風の元、初秋の頃とは言え紅葉には一足早い京都・相楽郡の平和公園前広場にて第28回目を迎えるコリア半島殉難者慰霊世界平和祈願大祭が今年も行われた。

昨年より静岡のNPO団体と静岡アジア人協会もUPF静岡の紹介により参加の運びとなった。今年の参加は2回目となる。
主催はNPO法人ニッポンコリア友好平和協議会
HP等によれば、
 『身元や遺族が確定された遺骨は故地朝鮮半島に帰還したものもあるが、大半の遺骨は生地に戻ることが出来ず無縁仏となり日本各地に散らばったまま慰霊も行われずにいたが、1980年に日韓親善仏教協会が「慰霊なくして真の友好と平和はない」と議決し、そのことにより日本人篤志家三木政楠氏の浄財と日韓有志の協力の下に京都府相楽郡南山城村童仙房の曹渓宗総本山高麗寺境内に金千洙代表役員より約1000坪の提供を受け慰霊塔が建立され、厚生省が地下倉庫に保管していた半島出身の旧帝国軍人、軍属の1136体も招魂し、以来23年間にわたり毎年10月に内外より多数の人士を集め殉難者の慰霊と日、韓・朝友好、北東アジア安定、世界平和を誓ってきたものである。』 と聞く
日・韓・朝の発展的友好関係を築くべくアジアと世界平和の為に心を一つにし
崔炳潤 梁英姫 両氏の司会のもと
信徒代表の献灯・参列者を代表として献花・代表焼香の後
大会辞を金光徳 在日本韓民族仏教徒総連合会名誉会長様が捧げられ
誓いの祈りとして 今年は兪光任氏が静岡アジア人協会として昨年に引き続き捧げた。
また今回は浜松より特別に鎮魂の舞“サルプリ”が金高順氏により奉納され
追悼の辞として 崔 徳山 大韓仏教元暁宗管長・成 慧光 在日本韓民族仏教徒総連合会会長・蔡 秋雄 学校法人金剛山理事により供えられた。

最後に 祭主として導師 曹溪宗総本山高麗寺 管長 釋 泰然様の誓いの祈りが捧げられました。

今回は特別に韓国より多くの僧侶と信徒の方々が参加なされ、皆の鎮魂の祈りが平和公園内広場に深く響きわたった。

司会の『天より多くの殉難者の御霊が大祭のこの場の降り、共に慰霊の言葉を聞き、鎮魂の舞に慰められ、管長釋 泰然師様の祈りにより往生と恩惠をわかち合う場となり、共に再び天に召されて行かれました』等の内容お話しの如く、参加者も共に恩恵をわかち合う場となりました。

内外100名程の参加者も読経に合わせ、献花・焼香を手向けられ、全体で韓国朝鮮半島の和合統一とアジアと世界の平和を念願する、想い深いひと時となりました。

静岡アジア人協会からも昨年に引き続き追悼の祈りの言葉として兪光任さんが語られた。
兪さんは、昨年は静岡清水で行われた94体の在日コリアンの無縁仏を民団・総連・行政が一つになって韓国の望郷の丘に奉還し祖国の地にお供えされた事を例に示しこの京都の地からも、南北の壁を越えて祖国に戻るその日を迎えられる様にと、哀切な想いで祈りの言葉を捧げました。

最後に楢柴 良隆 理事の『今後も様々な懸案を乗り越えてこの平和大祭が取り行われる事を誓いましょう!』という 閉会の辞により大祭が締めくくられました。〔静岡アジア人協会中部 高岡純雄〕

以上です
殉難の英霊。

霊位が身を捧げて犠牲になられしおかげにて、今の我々は平和なりし世を享受しつつ、祖国の発展と地球人類平和のために邁進することができ、今もこの地球村では戦争とテロ、イデオロギーの葛藤で互いに不信する不協和音が止まること無く繰り広げられており、私どもの今日この丹誠をお受けになり、霊位の生前につくりし罪業が、御佛の大いなる願力によって全て消滅し、極楽世界に往生されるようお導きください。

本日のこの祈願において霊位をして、この世でなせぬ因縁がとどまることなきようお導きください。
我ら皆が諸行無常の道理を悟り、一日一日の生活を確かに積み重ねてゆく姿勢をそっとお見とどけください。
終わりに世界の平和が一日も早くもたらされ、本日この場に參席された全ての方達の家庭に福縁が増進され、この生涯では幸福を掴みとられ、来生では恩惠を分かち合う佛子となられしことを。祈念申し上げます。

  南無釋迦牟尼佛   南無釋迦牟尼佛   南無是我本師釋迦牟尼佛
NOP法人申請に至るまでの経過

欧米列強に伍したとはいえ痛惜の植民地政策36年間に、さまざまな理由により朝鮮半島から渡日し、各地の炭鉱や工事現場などの事業所、軍需工場、戦地、震災地などで死亡し、身元や遺族が確定された遺骨は故地朝鮮半島に帰還したものもあるが、大半の遺骨は生地に戻ることが出来ず無縁仏となり日本各地に散らばったまま慰霊も行われずにいたが、1980年に日韓親善仏教協会が「慰霊なくして真の友好と平和はない」と議決し、そのことにより日本人篤志家三木政楠氏の浄財と日韓有志の協力の下に京都府相楽郡南山城村童仙房の曹渓宗総本山高麗寺境内に金千洙代表役員より約1000坪の提供を受け慰霊塔が建立され、厚生省が地下倉庫に保管していた半島出身の旧帝国軍人、軍属の1136体も招魂し、以来23年間にわたり毎年10月に内外より多数の人士を集め殉難者の慰霊と日、韓・朝友好、北東アジア安定、世界平和を誓ってきたものである。

日、韓・朝政府間で条約や声明で友好平和を謳ったとしても、生前は貧苦、病気、事故、空襲、流言飛語等で苦しみ、死後も関係国家のはざまで関心を寄せられずに無縁仏になり果て不幸な環境に終始した朝鮮半島出身者を慰霊する我々にとって、殉難者の後輩、子孫である在日の日本国内における法的、社会的地位向上を願うことはすなわち犠牲者の御霊に報いることになると信じて参拝してきたし、そのことが真の日、韓・朝友好であり、国籍の違いを超えて栄える共生社会であり、日本の内なる国際化を実践することにもつながっていくに違いない。
我々が全国に先駆け、関係国にかわり長年にわたり行なって来た活動をより発展させ、そして永続性を持たせるために特定非営利活動法人格を取得し、これまで行ってきた平和の推進・国際協力・人権擁護に加えて福祉の増進・社会教育の推進の活動をすすめ、趣旨に賛同する全ての日、韓・朝、在日の人士、法人が参画しやすくなるように日韓友好平和之塔を守る会を特定非営利活動法人化させることを平成19年9月12日に四天王寺安養殿にて開催された総会において決議したしました。
(1) 교토 고려사 위령제에 다녀와서 김고순 올림

이런 위령제 참석은 처음이다.
평화에 염원을 가슴에 안고 한국에서 주지 스님들이 많이 참석을 하셨다.
그리고 위령제 에서의 살풀이 공연또한 처음이었다.
무대준비 ,음향이 매끄럽지 못해 처음에는 긴장을 하였지만 조금씩 춤에 몰두 할수있었다.
다른 무대와는 다른 영령들과 함께 춤을추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위령제에 함께 참석했던 식구들은 다른 분위기를 느꼈다고 했다.
또는 표정과 발동작과 손놀림이 예술적이며, 나라가 인정한 예술 이라고들 말하였다.
살풀이는 한국춤의 미의 극치를 전해 줄수있는 춤으로 넋을 풀고 맺고 승화시키는 표현등 한을 공중에 뿌림으로써 살을 푸는 고도의 기술을 요한다.

(2) 교토 고려사 위령제 추도사     兪 光任

안녕하십니까.
지금 소개받은 유 광님 이라고 합니다.
오늘 이 뜻깊은 고려사 에서의 평화 위령제에 참석하게 되어 다시한번 역사의 뒤안길을 생각해 보게됩니다.
먼저 영령들에게 추도의 예의를 표 합니다.
그리고 여기 모이신 모든 분들과 오늘 이 위령제에 의의를 생각하며 추도사를 대신하고자 합니다.
제가 처음 이와같은 위령제에 참석한것은 지금으로 부터 15년전 제가 살고있는 시쥬오카 시미즈에서 입니다.
시미즈에는 93체의 유골을 안치해 놓은 무명묘가 있었습니다.
매년 추석 전후의 한 날을 잡아 민단,총련의 재일동포가 정성을 모아 제를 올리는 날 이었습니다.
그날 저는 무명묘의 비석에 새겨있는 문구에 눈이 멈추는 순간 눈시울이 뜨겁고 가슴이 뜨거워져 한동안 움직일수가 없었습니다.
그후 매달 유골 안치소에 가서 청소와 제를 올리기를 작년 3월까지 했습니다.
15년간 많은 사람들이 참석 했으나 한 두번 오다마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처음의 뜨거웠던 그 순간을 잊을수가 없어서 아니 잊으면 안된다고 매달매달 자신에게 되새기며 뜻 있는 사람들과 함께 해 왔습니다.
그런던중 시쥬오카 시미즈에서는 민단과 총련의 재일동포, 지역의 NPO 단체와 함께 작년 3월초에 조국 충청남도에 있는 망향의 동산에 93체의 영령을 안치할수 있었습니다.
그날은 3월 인데도 불구하고 전날부터 진눈깨비가 내리더니 새벽녘에는 하얀 눈송이로 변해, 일행이 망향의 동산에 도착 했을땐 하얀 눈으로 덮이어 있었습니다 물론 날씨 때문에 움직이는데 불편함도 있었지만 하얗게 덮인 망향의 동산에서 저는 93체의 영령들이 조국에서 하얗고 눈부시게 다시 살아나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날의 감동은 지금도 잊을수가 없습니다.
물론 유골을 조국에 안치하기의 까지 3년 기간에는 여러가지 곡절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준비하는 과정에서 한 분을 중심으로 모든 분들이 자기의 사정과 생각을 접으며 최선을 다하셨던 것을 저는 지켜봐 왔습니다.
그리고 그날의 행사는 한국의 연합 뉴스와 여러 매스컴 에서도 보도가 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는 오늘 이 자리에서 역사의 뒤안길을 다시한번 조심스럽게 더듬으며, 제가 15년전 처음으로 이와같은 위령제 행사에 참석 했을때의 그날을 생각해 보며 작년에 고려사 위령제에 참석하고 두번째인 오늘 이 자리에서 저는 감히 여기계신 모든 분들과 함께 역사의 한 페이지 안에 계기다는 의식과 자각을 가지시고 앞으로 한.
일 양국의 화합을 위하여 우리들이 할수있는 것을 찾아 나아가시길 원합니다.
그리고 지금 제가슴 속에서는 여기 고려사 위령제에 인연된 영령들이 조국에 안치되시길 간절히 소망하는 바 입니다.
오늘의 이 행사를 위하여 물심양면으로 수고해주신 모든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지금도 저의 가슴을 뜨겁게하는 비석의 문구를 낭독해 드리며 추도사를 마치고자 합니다.
이역만리 남의땅 남의나라에서
억울하게 희생되어 무주 고혼이 된 당신들이여
당신들의 백골도 영혼도 주인이 있고 조국이 있다.
멀지않은 장래에 당신들을 데리려 올 그날까지
편안히 고이 잠드시라.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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